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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대만 IDEC(세계민주교육한마당)을 다녀와서

대만 IDEC을 다녀와서


2024. 8. 29. 진달래

 

여름 들살이가 끝난 다음날 새벽 인천공항에서 대만으로 출발했다. 들살이 후 쉬지 못하고 바로 떠나 해소되지 못한 피로감과 9일이라는 다소 긴 일정에 대한 부담감을 안은 채 도착한 대만은 예상대로 무척 더웠다.

처음 이틀은 대만 타이페이의 큰 행사장에서 대만 내의 대안 학교와 관련 단체들이 함께 여는 교육박람회 행사와 아이덱 행사가 함께 열렸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타이페이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이란’ 시 탐강대학교여서 처음 이틀 동안은 타이페이와 이란을 왕복 세 시간 오고 가며 진행되었고, 영어와 중국어로 진행되는 행사와 강연들 속에 간혹 통역이 되는 때를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낯설고 산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덱을 처음 만드는 과정부터 함께 하며 이스라엘에서 오랫동안 민주 학교를 운영해 온 야콥헥트의 민주주의 강연과 전쟁 상황인데도 참여한 우크라이나의 카타리나가 보여준 당찬 모습에 매료되어 이후 강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3일차부터는 이란 탐강대학교에서 오롯이 아이덱이 진행되고, 낯선 숙소와 환경에 대한 적응이 어느 정도 되어 본격적으로 ‘내가 아이덱에 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탐강대학교는 아주 높은 산위에 위치한 캠퍼스라 내가 묵은 기숙사 방의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였고 대만이 섬임을 실감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던 행운도~~^^

 

아이덱 행사는 가장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오전에는 키노트라고 해서 아이덱 조직위원회에서 모신 강사들의 강연이 시간대 별로 펼쳐지고, 동시에 아이덱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스스로 개설하는 강연 혹은 활동들이 ‘오픈스페이스’ 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어쩌면 아이덱의 꽃은 이 오픈스페이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언어적 한계가 있다. 주로 영어로 이루어지는 강연들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함께 간 참가자들 중에 통역이 가능한 분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통역해주는 강의들을 쫓아 다니며 열심히 듣곤 했다. 

다행히 나처럼 야콥헥트와 카타리나의 강의를 더 듣고 싶어하는 한국 참가자들이 많아서 한국 참가자 대표격의 역할을 하신 공립대안중학교 ‘신나는 학교’ 교장 하태욱 선생님이 두 분을 섭외해 강연이 이루어지고 통역도 나서서 해주셔서 찐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야콥헥트의 강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내 생각의 지평을 조금 더 깊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민주주의라는 단어와 의미가 나에게 너무 익숙해서 스스로 질문하길 멈췄던 것은 아닐까. 야콥헥트가 첫 번째 강의에서 ‘민주교육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주주의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가’를 품은 질문이어야 하며, 더불어 그 질문은 내가 서 있는 곳, 내 가족과 주변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은 마음을 울리며 깊게 다가왔다. 질문을 멈춘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두 번째 강의를 들었을 때 야콥헥트는 ‘학교 화장실 청소 문제’이야기를 예로 들며 민주주의는 완벽한 이상향이 아니며 나아가는 것, 끊임없는 갈등과 문제들을 마주하며 어떻게 더 좋은 상태로 만들어 갈 것인가 계속 논의하는 그 과정이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를 했다. 야콥헥트가 교장으로 있던 시절 화장실 청소문제는 늘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아이들과 수많은 회의를 하고 규칙들이 만들어져도 화장실이 완벽하게 깨끗해지지 못했다고. 그런데 언젠가 그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이 학교 화장실문제를 떠올리면 화장실 변기를 닦던 교장샘의 뒷모습과 논쟁하던 그 과정 자체가 기억에 남고 의미있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깨끗한 화장실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좋은 상태로 있을까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추구해나가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 나는 우리 무지개학교의 살림수업을 떠올리기도 했다. 우리도 아이들에게 살림수업의 중요함은 과정이라는 것,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우며 나아가는 과정이 살림수업이라고 늘 이야기해왔다.

 

야콥 헥트는 어린 시절 난독증이 있었고 기질적으로 학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어려웠던 아이라고 한다. 그래서 학교밖으로 나와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나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학교는 모두에게 필요한 학교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야콥은 무엇이 민주적인가? 라고 하는 질문에 각자의 독특성를 찾아나가는 것이 첫 번째의 조건이고 두 번째 나의 독특성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독특성을 찾고 같이할 때 민주교육의 의미가 살아난다고 했다. 그냥 독특하구나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독특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말이다. 그러려면 세 번째로 세계가 그 독특성 속에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만의 아이덱의 주제도 ‘다양성으로 향하는 다리를 놓자’였다. 다양성, 독특성이 인정되며 그 자체로 조화롭게 살아갈수 있을 때 민주주의는 이루어지는 것이겠구나. 무지개학교에서 아이들 한명 한명이 가지고 있는 빛깔과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것이 서로에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할까?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끝없는 고민을 해오던 것은 민주주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구나 새삼 느끼며 조금은 좁은 틀 안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이켜보게 되었다.

강연 말미에 야콥이 했던 말은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는 나에게 정말 힘이 되었다. ‘우리가 민주학교(대안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관계에 대한 교육, 지금 사회가 그것이 더 필요로 하는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걸 믿어도 된다.’ 라며 한국의 대안교육이 에너지가 넘치며 그만큼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도 덧붙여주었다.

야콥과 함께 감동을 준 또 한 사람, 카타리나. 우크라이나에서 민주학교를 운영하며 11살 딸과 함께 아이덱에 참여한 카타리나의 강연은 야콥의 강의와 또 다르게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준 강연이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은 수많은 책들 속에 이미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덱을 다녀오고 나서 야콥이나 카타리나의 이야기가 이미 읽었거나 알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큰 울림을 주는가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사람과 ‘만났기’때문일 것 같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단순히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존재와 삶 그 자체와 만났기 때문에 이렇게 감동을 받고 오래 곱씹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덱에 참 잘 다녀왔구나, 이런 연수의 기회를, 그것도 동료교사들과 함께 가질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마음이다.

카타리나의 강의는 그녀가 전쟁속에서 어떤 삶의 본질과 만났는지, 전쟁속에서도 교육은 계속되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강연이었다. 카타리나의 강연을 메모한 글을 무지개부모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큰 울림이 있었던 부분은, 성미산학교의 한 학생(고등과정)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오랜 분단국가인데 오히려 분단 상황이나 전쟁에 대한 무력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평화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더 키울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라고 하는 질문에 카타리나가 ‘악이 점점 작은 것에서부터 우리 삶을 갉아먹는 것처럼 반대로 평화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그것이 쌓일 때 오는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전 제인구달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제인구달에게 누군가 개인의 실천으로 환경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제인구달은 ‘뿌리와 새싹을 하세요.’라는 일관된 답을 했었다. (뿌리와 새싹은 동물, 이웃, 환경을 위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전 세계적인 풀뿌리 환경운동 모임. 1991년 탄자니아에서 제인 구달 박사님을 만난 16명의 청소년으로 시작해, 현재 50여 개국 수십만 명의 청소년들이 국제적으로 교류하는 네트워크.)

작은 것을 꾸준히 하는 것, 결과에 대한 회의나 두려움 대신 지금 당장 무엇이든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 앞서 야콥이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던 말과 다시 한번 내 안에서 연결되었다.

카타리나는 전쟁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민주교육의 필요성을 다시 느꼈다고 했다. 민주교육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자유이며, 하지만 민주교육은 아나키가 아니고, 누군가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 앞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또한 민주교육은 비판적 사고를 가르쳐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야콥은 민주주의를 위해 나와 다른 의견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카타리나와 야콥의 말을 섞으면 민주주의란 나의 자유가 다른 이의 자유 앞에 멈춰서서 귀 기울이며 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지개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서로 간에 존중하는 방법, 존중할 수 있는 거리 두기, 귀 기울여 듣는 것의 중요성을 교육과정, 생활속에서 끈임없이 강조하며 교육하고 있는 데 이것이 바로 모두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길이라는 점을 나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덱을 가기전에 아이덱이 어떤 행사인지 알지 못했다. 어떻게 진행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경험하지 않고는 아이덱이 주는 역동성이나 현장성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이덱이 30여년 진행되어 오는동안, 태평양을 마주보고 있는 아시아와 호주`뉴질랜드가 모여 하는 APDEC이 생겨났다고 한다. 아이덱 기간동안 APDEC이 열려 다음 개최지를 결정하는 회의를 참여했을 때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미얀마, 홍콩에서 온 참가자들이 나와 각 나라 민주교육의 상황을 나누어주었을 때, 인도네시아는 재작년부터 대학입시를 폐지했다는 이야기, 미얀마가 극심한 내전의 상태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끈을 놓치 않고 있는 사람들이 전한 이야기, 중국에게 계속 위협받고 있는 홍콩의 참가자들이 자기들의 발언을 신경 쓰며 얼굴을 찍어 SNS에 올리지 말아달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들으며, 내가 세계속의 한 사람 그리고 무지개학교라는 나의 대안교육현장이 이렇게 여러 나라들에서 애쓰고 있는 많은 대안교육현장들의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세계지도 안에서 지도속의 나, 내 위치를 확인하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가 다시 한번 느껴지는 기회가 되었다.

그것은 탄자니아에서 홀로 참가한 청년이 방과후학교를 하고 있는데 장애통합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짧은 영어로 소통했던 어느날 아침에도 느꼈던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무지개교사들이 한국의 날에 진행한 강강술래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한국의 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아이들이 정성껏 만들어 준 ‘아름다운 한국말’키링과 너울이 애써서 번역해주신 무지개팜플렛을 외국인 참가자들과 나누며 교류의 장을 열었다.

한국의 날 행사 마지막 대미를 장식했던 강강술래는 더운 날씨와 짧은 영어로 잘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흥겹게 진행되었다. 노란 무지개티를 대만까지 공수해 간 보람이 있게 참가한 모든 이가 강강술래를 좋아했고 일부러 찾아와 한번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참가자들도 여러 명이 있었다.

손에 손을 잡고 기원하며 노래하고 노는 강강술래가 갖는 의미가 바로 아이덱이 아니었을까.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번엔 교사들만 아이덱에 참여했지만, 학부모들도 함께 참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중`고등대안학교 아이들도 많이 참여했고 초등아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5, 6학년 아이들은 함께 참여해봐도 좋겠다.


힘은 들었지만 9일이라는 긴 시간이 아깝지 않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교육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온 연수였다. 함께한 동료들, 마음을 모아준 부모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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