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무지개 학부모로써 6년반을 보내면서 내가 성장한 감정의 정리들
( 강동현,강민재 아빠 파랑 )
안녕하세요.
첫째아들인 동현이를 2학년 2학기 편입생으로 무지개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무지개 학부모가 되어 버린 파랑입니다. 그리고 다음연도에 둘째 아들 민재를 입학시키면서 사랑방 교육생이 되면서 무지개 학부모 교육을 받으며 무지개학교 교육에 대해서 한주씩 배워 가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받기 전에 무지개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 희망감만으로 우리 아들들을 입학시킨 것일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입부모 장기자랑에서 저희 부부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뒤로 물릴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을까요?
한 주 한주 교육 사랑방을 참여하면서 회사일을 하면서 시간을 내면서 참석한 사랑방 교육시간이였을까요? 내용을 열심히 참여하려는 노력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한 주 한 주 교육 사랑방의 시간도 내용도 좋았지만 한분 한분의 이끄미를 만나는 반가운 시간도 소중했습니다. 이끄미 한분 한분의 다른 성격과 캐릭터는 교육사랑방의 시간들을 풍성하게 만드는데 핵심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사랑방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은 되려 나를 발견하고
돌아보는 시간이였습니다.
그렇게 일년이 흘러 교육사랑방의 종강식날 선배 학부모님들이 오셔서 축하연주를 해주던
그모습은 감사와 어쩌면 어리둥절함이 겹쳐서 오래 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사랑방을 하는 그해 저는 1학년 대표로 대표자회를 함께 하면서 한해를 보냈습니다.
그 해 대표자회는 다사다난한 대표자회였습니다. 아마도 역대급 대표자회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않일 것입니다. 그해는 한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선생님들이 모두 퇴사를 한 한해였습니다.
그것은 무지개 모든 구성원들에게 놀라운 충격의 일이였고 내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 일까요? 급하게 구성된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분들의 몇날 몇일에 토론과 발빠른 대처로 새로운 선생님들로 구성하게 되었고 새로운 한해를 새로운 선생님들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무지개의 재도약을 알리는 아프지만 큰 성장통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우리 무지개는 두 개의 학교건물을 하나로 합쳐서 운영하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것은 전쟁통에서 피난을 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주말이고 방과 후 시간에도 짐을 정리하느냐 개인 시간도 쓰면서 학교 짐을 정리하는 모습 , 학부모들은 이사를 위해 주말일찍 나와서 책을 나르는 모습, 졸업한 학부모,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짐을
나르고 빼내고 차로 나르는 모습도 제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참 영웅들이
엄청나게 나온 때였습니다. ** 특공대 , 어벤져스가 이때처럼 많이 출현한 때가 있을까요?
그런 영웅들과 학부모, 학생 , 선생님 , 주민들의 합심으로 성공적으로 학교 이사를 마치고
지금의 학교로 무사히 정착을 했을 때 우리는 학교 사용 설명서 영상을 찍고 얼마나 흐뭇해 했는지 그리고 학생들과 선생님들 만의 조촐한 입주 의식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때 대표자회의 대표로 제가 활동하면서 저는 소풍을 주로 하는 대표자회의가 되도록 서울대공원 벤치에서 진행한 회의 , 로고스 교회 벤치에서 했던 회의 , 학교 3층 강당에서 했던 회의 등등으로 재미있는 회의를 진행하려 했던 대표자회는 무지개 생활에서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해 저는 자체 안식년을 가지려 했습니다. 쉼없이 달려온 지난 한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쉬려고 잠수 아닌 잠수를 타려는 그때
1학기 어느날 마을 이장님이셨던 나무 그늘과 담비와 티타임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마루도 함께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무그늘이 텃밭대장 자리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저는 나무그늘이 마을 이장으로써 고생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조건 도움을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텃밭대장 자리를 승낙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텃밭 관리라는 것이 뭔지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한해였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텃밭을 관리하는 즐거움 그리고 가족이 함께 일을 할때의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 망치와 이야기 나누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였습니다.
이제는 민재가 5학년이 되면서 우리 학교에서 또 대표자회의 대표를 뽑아야 하는 시간이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민재가 4학년이 될 때 우리 학부모들끼리 암묵적으로 정해진 임무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대표를 하는 방향으로 우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번째 전체 대표가 되었습니다. 2번째 전체대표가 되었을 때 가장 문제는 그전에 비해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학교 운영과 학비 급감으로 인한 예산이 줄어든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신입학생과 그 가족들을 들어오게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돌맹이의 모토를 동아줄처럼 잡고 월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것은 “ 일단 해보자 ” 였습니다. 그 마음으로 모든 것을 편하게 마음 먹고 모든지 해보려 했습니다.
그때 했던게 매달 월례회 개최 , 제가 담쟁이 마을 간사를 한 것 , 신입생 유치를 위해 전단지를 돌린 것 (너울이 주도적으로 했지만) , 홈페이지를 새로 오픈한 것 등등 수많은 일들을 정말 학부모들이 성심 성의껏 진행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노력으로 그 다음해에 신입생이 무려 8명이 이나 들어오는 기적같은 일이 버려졌습니다. 그 당시 목표 신입생수가 6명인걸 감안하면 130%나 들어오는 일이였습니다. 그때 힘을 모아주신 학부모 , 선생님 , 주민분들
학생들 모두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민재의 개프의 시간이였습니다. 민재는 생각보다 개프를 힘들어 했습니다.
개프를 안하고 싶다고 학교에 안가고 싶고 , 학생 전체 대표를 하면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되면서 민재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저의 모습에 무기력 감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힘들어 하는 민재 개프를 도와주신 선생님들 까마귀, 고양이 , 달님 , 자몽 , 온 , 알밤 , 요다 , 다람쥐 등등의 큰 도움으로
민재가 개프 발표하는날 그동안 민재가 얼마나 큰 도움으로 이일을 했을지 상상이 되었고
그날을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러 오는 학생, 학부모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2학기때 교육사랑방 이끄미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빵에 대한 미안함으로 수락한 일입니다. 빵은 제가 대표 할 때 마다 음으로 양으로 저를 너무 많이 도와준 은인 같은 사람이였기에 빵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밤 교육 사랑방 이끄미는 새롭게 만난 신입 아빠들에게 배우는 시간이였습니다. 아직도 브레드가 알려준 마케팅 기법은 앞으로 써 먹을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졸업여행을 다녀온 민재를 보면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 보면서
무지개에서 참 잘 켰다. 동현이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무지개에서 배웠던 것이 이 아이에게 스며들었을 것을 상상하며 오늘도 나는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무지개의 학부모로써 느꼈던 기억나는 감정의 정리입니다.
고마움, 재미 새로움 ..... 그리고 애듯하게 남게 될 추억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반갑게 인사하고 또 만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초등 무지개 학부모로써 6년반을 보내면서 내가 성장한 감정의 정리들
( 강동현,강민재 아빠 파랑 )
안녕하세요.
첫째아들인 동현이를 2학년 2학기 편입생으로 무지개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무지개 학부모가 되어 버린 파랑입니다. 그리고 다음연도에 둘째 아들 민재를 입학시키면서 사랑방 교육생이 되면서 무지개 학부모 교육을 받으며 무지개학교 교육에 대해서 한주씩 배워 가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받기 전에 무지개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 희망감만으로 우리 아들들을 입학시킨 것일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입부모 장기자랑에서 저희 부부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뒤로 물릴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을까요?
한 주 한주 교육 사랑방을 참여하면서 회사일을 하면서 시간을 내면서 참석한 사랑방 교육시간이였을까요? 내용을 열심히 참여하려는 노력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한 주 한 주 교육 사랑방의 시간도 내용도 좋았지만 한분 한분의 이끄미를 만나는 반가운 시간도 소중했습니다. 이끄미 한분 한분의 다른 성격과 캐릭터는 교육사랑방의 시간들을 풍성하게 만드는데 핵심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사랑방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은 되려 나를 발견하고
돌아보는 시간이였습니다.
그렇게 일년이 흘러 교육사랑방의 종강식날 선배 학부모님들이 오셔서 축하연주를 해주던
그모습은 감사와 어쩌면 어리둥절함이 겹쳐서 오래 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사랑방을 하는 그해 저는 1학년 대표로 대표자회를 함께 하면서 한해를 보냈습니다.
그 해 대표자회는 다사다난한 대표자회였습니다. 아마도 역대급 대표자회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않일 것입니다. 그해는 한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선생님들이 모두 퇴사를 한 한해였습니다.
그것은 무지개 모든 구성원들에게 놀라운 충격의 일이였고 내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 일까요? 급하게 구성된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분들의 몇날 몇일에 토론과 발빠른 대처로 새로운 선생님들로 구성하게 되었고 새로운 한해를 새로운 선생님들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무지개의 재도약을 알리는 아프지만 큰 성장통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우리 무지개는 두 개의 학교건물을 하나로 합쳐서 운영하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것은 전쟁통에서 피난을 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주말이고 방과 후 시간에도 짐을 정리하느냐 개인 시간도 쓰면서 학교 짐을 정리하는 모습 , 학부모들은 이사를 위해 주말일찍 나와서 책을 나르는 모습, 졸업한 학부모,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짐을
나르고 빼내고 차로 나르는 모습도 제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참 영웅들이
엄청나게 나온 때였습니다. ** 특공대 , 어벤져스가 이때처럼 많이 출현한 때가 있을까요?
그런 영웅들과 학부모, 학생 , 선생님 , 주민들의 합심으로 성공적으로 학교 이사를 마치고
지금의 학교로 무사히 정착을 했을 때 우리는 학교 사용 설명서 영상을 찍고 얼마나 흐뭇해 했는지 그리고 학생들과 선생님들 만의 조촐한 입주 의식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때 대표자회의 대표로 제가 활동하면서 저는 소풍을 주로 하는 대표자회의가 되도록 서울대공원 벤치에서 진행한 회의 , 로고스 교회 벤치에서 했던 회의 , 학교 3층 강당에서 했던 회의 등등으로 재미있는 회의를 진행하려 했던 대표자회는 무지개 생활에서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해 저는 자체 안식년을 가지려 했습니다. 쉼없이 달려온 지난 한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쉬려고 잠수 아닌 잠수를 타려는 그때
1학기 어느날 마을 이장님이셨던 나무 그늘과 담비와 티타임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마루도 함께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무그늘이 텃밭대장 자리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저는 나무그늘이 마을 이장으로써 고생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조건 도움을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텃밭대장 자리를 승낙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텃밭 관리라는 것이 뭔지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한해였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텃밭을 관리하는 즐거움 그리고 가족이 함께 일을 할때의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 망치와 이야기 나누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였습니다.
이제는 민재가 5학년이 되면서 우리 학교에서 또 대표자회의 대표를 뽑아야 하는 시간이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민재가 4학년이 될 때 우리 학부모들끼리 암묵적으로 정해진 임무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대표를 하는 방향으로 우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번째 전체 대표가 되었습니다. 2번째 전체대표가 되었을 때 가장 문제는 그전에 비해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학교 운영과 학비 급감으로 인한 예산이 줄어든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신입학생과 그 가족들을 들어오게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돌맹이의 모토를 동아줄처럼 잡고 월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것은 “ 일단 해보자 ” 였습니다. 그 마음으로 모든 것을 편하게 마음 먹고 모든지 해보려 했습니다.
그때 했던게 매달 월례회 개최 , 제가 담쟁이 마을 간사를 한 것 , 신입생 유치를 위해 전단지를 돌린 것 (너울이 주도적으로 했지만) , 홈페이지를 새로 오픈한 것 등등 수많은 일들을 정말 학부모들이 성심 성의껏 진행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노력으로 그 다음해에 신입생이 무려 8명이 이나 들어오는 기적같은 일이 버려졌습니다. 그 당시 목표 신입생수가 6명인걸 감안하면 130%나 들어오는 일이였습니다. 그때 힘을 모아주신 학부모 , 선생님 , 주민분들
학생들 모두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민재의 개프의 시간이였습니다. 민재는 생각보다 개프를 힘들어 했습니다.
개프를 안하고 싶다고 학교에 안가고 싶고 , 학생 전체 대표를 하면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되면서 민재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저의 모습에 무기력 감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힘들어 하는 민재 개프를 도와주신 선생님들 까마귀, 고양이 , 달님 , 자몽 , 온 , 알밤 , 요다 , 다람쥐 등등의 큰 도움으로
민재가 개프 발표하는날 그동안 민재가 얼마나 큰 도움으로 이일을 했을지 상상이 되었고
그날을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러 오는 학생, 학부모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2학기때 교육사랑방 이끄미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빵에 대한 미안함으로 수락한 일입니다. 빵은 제가 대표 할 때 마다 음으로 양으로 저를 너무 많이 도와준 은인 같은 사람이였기에 빵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밤 교육 사랑방 이끄미는 새롭게 만난 신입 아빠들에게 배우는 시간이였습니다. 아직도 브레드가 알려준 마케팅 기법은 앞으로 써 먹을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졸업여행을 다녀온 민재를 보면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 보면서
무지개에서 참 잘 켰다. 동현이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무지개에서 배웠던 것이 이 아이에게 스며들었을 것을 상상하며 오늘도 나는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무지개의 학부모로써 느꼈던 기억나는 감정의 정리입니다.
고마움, 재미 새로움 ..... 그리고 애듯하게 남게 될 추억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반갑게 인사하고 또 만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