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jigae school
“그네 만들기”는 2학기 살림수업과 기초학습의 활동 주제였다. 본래 아이들과 주제망에서 펼치기로 했던 2학기 살림수업 계획은, 1학기 때 만든 닭장을 수리해 병아리를 키워가면서 나무 소도구들(무기, 몽둥이, 숟가락 등)을 다양하게 만들어 보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숲에서 곤충 관찰하기, 자전거로 양재천 라이딩하기, 스케이트 타기, 요리하기도 아이들이 하고 싶어 했던 활동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학기 집살림은 계획 대부분을 수정하여 “놀이터 만들기” 그 중에서도 “그네 만들기”를 하며 살림수업을 했다.
코로나19는 하반기에 들어서도 확산세가 잡히질 않았다. 방역 수위는 점차 높아 가고, 등교나 생활 방식에 대한 조심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야만 했다. 어쩌면 우리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등교 일수가 낮아지거나, 반 구성원 전부가 모이지 못한 채 학교생활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대비해야 하는 현실 상황으로 흘러갔다. 소도구를 정확히 다루고,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시간 동안 교사가 바라봐 주며 적절한 도움을 주고, 그것을 활용해 함께 놀거나 상황극이든 무엇이든 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의 흐름이 끊어짐 없이 이어져야 한다고 보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2학기 흐름을 교육적으로 잘 펼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한 시간 한 시간, 만들기를 한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좋은 경험을 했다, 재미있었다’ 이외에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기초학습으로의 연결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쉽게 풀어내기 어려웠다.
교사회의 때 반 운영이나 수업에 관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면서, “놀이터 만들기”와 같은 방식의 활동으로 교육청지원금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나는 ‘그 주제라면 아이들이 소수 인원으로 등교를 하더라도, 등교하는 날이 줄어들더라도 흐름을 가지고 수업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기초학습뿐 아니라 살림수업의 목표들을 충족하면서 전개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은 이미 머릿속에 구체적인 풍경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고, 남은 건 “놀이터 만들기”가 ‘아이들이 하고 싶은 활동, 곧 우리의 2학기 살림수업 주제’가 될 수 있게 하는 과정이었다. 더불어 지금 집살림 두 교사도 이끌 수 있고, 아이들에게 적절한 기술을 가르쳐 줌으로써 만들고자 하는 것을 완성할 수 있다는 교사들의 확신-혹은 근거 마련 방안도 필요했다. 우선은 나만큼 “놀이터 만들기” 수업 선택에 확신을 보이지 않는 동료 담임교사를 설득해 ‘우리의 계획’이 될 수 있게 소통했다. 나보다 목공 경험과 기술이 있고, 또 아이들 안에서 비슷한 비중으로 수업을 나누어 해 나가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뜻 모으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뜻을 모은 다음에는 아이들과의 회의를 준비하면서, 한편으로는 목공과 살림수업 경험이 충분한 전직교사 까마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들과는 흐름짜기 시간에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답답함 속에서 계획했던 것 중 가장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을 흐름에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뭔가 아쉬운 윗마당에 놀이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고학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조금 어려웠는데, 교사의 말에 곧장 신나서 만들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저학년들과 달리 고학년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너무 힘들 것 같다. 그리고 돈도 많이 들 것 같다. 남은 시간 동안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는 시간이 너무 없을 것 같다.’와 같은 반응을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고민스러운 반응을 매우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 거 아니야, 할 수 있을 거야.’ 같은 말을 나열하는 것은 아이들의 반감을 사기 쉽다는 판단을 했다. 나의 바람은 고학년들의 걱정이 곧 우리의 현실로 다가올 텐데, 그 상황에서 아이들이 ‘꼭 하고 싶다. 힘들지만 재미있다.’는 의욕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면 살림수업에서는 교사의 뛰어난 지식이나 기술, 아이들의 수행 능력보다 ‘우리의 활동, 나의 활동’이 될 수 있도록 강한 동기부여 과정을 거치는 것, 그래서 반 아이들 대부분의 마음 속에 활동 주제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우리가 ‘방법을 찾아보고’, ‘해 보고’, ‘계획을 바꿔 보고’, ‘다시 해 보고’, ‘토론하고’, ‘정리하고’의 반복을 통해 메꾸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의 회의는 “놀이터가 필요한가”에 이어 “어떤 놀이터가 필요한가”로 이어졌다. 필요하지만 왜 우리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이들 내부에서 정리되었다. (집살림이잖아! 무지개공작소잖아! 그럼 누가 해!) 교사들의 요청을 받은 전직교사 까마귀는 ‘아이들과 놀이터라는 실물을 살펴보며 활동을 계획하라’, ‘다양한 자료를 인터넷, 그리고 교사들이 만든 실물 자료를 통해 접하게 하라’는 조언을 하면서, 우리의 “놀이터 만들기”에 기꺼이 합류해 주었다. 아이들에게도 - 무지개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우리의 살림수업 방식을 만들어 낸 사람이기도 하고, 목공을 아주 잘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금강을 건넌 배, 무지개집, 학교의 다양한 기물들)을 만들어 본 - 옛 선생님이 우리를 도와주러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성장여행 바라지로 함께 시간을 보낸 5학년들의, 조금 무섭지만 아주 심한 장난꾸러기 어른이라는 정보가 더해져 아이들도 만남을 기대함과 동시에 어쩐지 안심하는 눈치였다. 알밤과 요다도 미리미리 준비할 거야. 그래서 너희들만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약속을 하고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무지개회의에서 우리반이 윗마당에 놀이터를 만드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했다. 많은 아이들의 호응을 얻었고, 어떤 놀이기구가 필요한지 의견을 모았다. 그네, 집라인, 해먹, 구름사다리, 클라이밍, 놀이집. 집살림 아이들은 전교생에게서 받은 놀이기구를 각자 그림으로 디자인해 오기로 했다. 그리고 벽에 모두 붙여두고 한동안 같이 보았다. 한 사람 당 스티커 2개 씩을 가지고 투표를 했다. 5학년 아이의 “타이어그네”가 놀이터 만들기의 작업 주제로 결정됐다.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도 더불어 시작됐다. 우리에게는 닭장 만들기를 통해 경험한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놀이터에 “그네 견학”을 가 보기로 했다. 신나게 타 보면서 그네가 앞뒤좌우로 움직이는 폭을 기록하고, 그넷줄이 매달릴 기둥과 트라스 구조를 눈으로 확인하고 일지에 기록했다. 닭장을 만들 때 자의 눈금을 cm로 기록하며 자 사용법을 익혔으니, 놀이터만들기부터는 건축하는 사람들처럼 mm로 통일해 기록하고 대화하기로 했다.
우리가 타 본 놀이터 그네의 구조물은 철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로 만들 것이다. 튼튼하게, 안전하게 만들어 내려면 어떤 모양으로 구조물을 계획하고 조립해 만들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교사들이 먼저 자료찾기를 해 보고, 아이들과 만들게 될 트라스 구조를 미니어처로 만들며 수업 준비를 했다. 아이들과의 수업 시간에는 인터넷(핀터레스트)에서 다양한 버팀목 구조물(트라스) 형태로 만들어진 나무 그네들을 검색해서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구조물들의 연결부가 공통적으로 어떻게 결합돼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림으로 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만든 미니어처 트라스가 아이들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원리를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실물 그네를 만들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계획한 그네 구조물 중 버팀목(기둥) 역할을 하는 A트라스 폭만 1440mm이었다. 7미터에 가까운 길이로 만들어질 구조물의 존재감이 아직은 모눈종이 바깥에서 어떤 모양이 될 지 아이들에게 가 닿지 않는 상태였다. 무척 무겁고, 위험할 수도 있고, 또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망했다’를 입에 달고 지내는 아이들에게 실패에 대한 너무 큰 부담은 의욕 상실로 이어지거나 다툼으로 연결된다. 까마귀의 조언으로 우리는 실물의 1/4 크기로 미니 그네부터 만들어 보기로 했다. ‘큰 것은 곧장 만들기 부담되니 연습해 보자’고 시작했지만, 수업 목표는 A트라스의 구조를 이해하며 만들어보기, 모둠끼리 마음모으기, 그넷줄이 달릴 대들보와 연결하는 부분을 얼만큼 보강하는 게 튼튼할지 계획하고 확인해 보기, 계획과 토론, 작업 내용 일지에 기록하기였다.
실물을 가지고 하는 이론 수업은 아이들이 스스로 원리를 터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눈으로 실물을 보는 동시에 두뇌가 회전되며 “저렇게 하는 거구나. 그럼 이렇게 해야겠네.”라고 생각이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한편으로 실물을 보고, 직접 만드는 계획을 세우는 과정은 "내가 무엇을 잘 모르는지” 확인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장치 역할도 한다. 한 6학년 아이는 교사의 설명을 들을 땐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각재 크기대로 종이를 오려서 만들어 보려니 헷갈리는 지점이 있고, 그걸 넘어서서 각재로 만들어 보려니 평면도형과 다른 입체도형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랜시간 교사와 이야기도 나누고 스스로 고민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작은 A트라스 구조물을 완성했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모둠짱으로서 모둠 작업을 이끌려니 자기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던 몇몇 아이들도 어깨 너머로, 귀를 활짝 열고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다. 교사로서는 꼭 "잘 하는 아이"가 모둠짱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잘 못하는 아이"가 모둠짱일 때 모둠원 전체가 힘을 내고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공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사가 도와줄 부분은,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과 역할을 나눠 가며 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 모르는 걸 물었을 때 반가워하는 것 정도이다.
모형 그네 만들기는 2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A트라스를 만든 후 대들보로 연결해 완성했다. 경쟁하듯 자기 모둠이 더 빨랐다, 잘했다고 하던 아이들이 '모두의, 우리의 그네'를 만드느라 분업을 했다는 걸 경험했다. 내친김에 곧장 실물 그네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윗마당으로 데려갔다. 그곳에 우리가 세울 그네 크기를 줄자로 재서 가늠해 보았다. 모형으로 만든 그네처럼 트라스가 2개인 것이 적절한가. '그네가 너무 커서 트라스가 2개뿐이면 휘청일 것 같다, 3개는 되어야 할 것 같다, 대들보와 트라스 연결 부분에는 대각선으로 버팀목을 더 대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아이들 안에서도 나와 주었다.
모눈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A트라스 3개를 세우려면 주춧돌 6개가 필요하는 걸 확인하고 그 주춧돌의 위치 잡기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수학 문제집에서는 사칙연산과 수에 관해 공부하는 방향으로 치우치기 쉽다. 도형이나 통계, 측정 영역은 크게 와 닿기가 어렵다. 그러나 살림수업에서는 반대이다. 나눗셈을 못하면 누군가 뺄셈을 반복해서 수치를 계산해도 되지만, 도형의 특징을 모르거나 정확히 측정할 줄 모르면 '만들기'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2학기 놀이터만들기 활동이 시간 여유가 없어 기초학습을 다양하게 전개하지 못했어도 의미를 갖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실제 작업할 시간보다 다음 작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기초학습으로 녹여내 같이 공부하면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컴퍼스로 원을 그려 보며 원에 대해 공부하고, 원 그리기 방식을 활용해 수평과 수직 조건을 충족하는 버팀목 자리를 찾아 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원을 그려보는 연습만도, 작도 원리를 활용해서 점 찍기 해 보는 시간이 조금 더 충분히 주어졌더라면. 고학년 중심으로 몇몇 아이들이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마당 위에 주춧돌 자리를 찍는 단계로 넘어갔다.
교사들은 까마귀의 조언대로 아이들과 한참 떨어진 자리에서 차를 마시며 지켜보았다. 우리는너희 사이에 끼어들지 않을 거라고, 아는 아이들이 모르는 아이들에게 잘 알려주면서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긴장이 됐다. 신기하고도 섭섭할 정도로 아이들은 고학년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들 나름대로 활동을 이어갔다. 교사들이 설명할 때 딴청을 피우던 아이들까지도. 고학년은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이해를 도우며 교사의 마음을 이해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말뚝을 박고 노끈을 묶어 '인간 컴퍼스' 놀이를 하듯 자리를 찾아 표시했다. 주춧돌 자리의 위치가 확실한가에 대해서 확인하는 것은 쉬는 시간에도 칠판 앞에서 계속 토론하며 이어갔다.
그러나 주춧돌베이스(콘크리트)를 수평을 맞추어 박는 것에 대한 고민만은 교사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수업 시간 부족으로 인해 그네만들기 중 어떤 과정은 "작업, 결과"에 중심을 두고 지나간다고 감안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지 못하고 곧장 정해진 답을 바탕으로 마련된 작업으로 넘어간 지점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아쉬움은 아마도 다음 살림반 수업을 진행할 때 보다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 그로 인해 아이들이 탐색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되도록 수업 준비를 하는 방향으로 반영될 듯하다.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도, 이등변 삼각형의 조건은 두 변의 길이가 같고 두 각의 크기가 같다"는 것을 집살림 아이들은 두께 120mm, 길이 3600mm 각재 두 개를 붙여 A트라스를 만들고 그 사이사이를 보강할 버팀목 길이를 구하는 과정 내내 우리는 삼각형을 공부한 셈이었다. 최종 고정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며칠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트라스를 잠시 붙였다가 다시 떼서 정리했다가, 똑같은 상태로 두고 다시 필요한 작업들을 해야 했던 시간동안 그 "똑같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자기 모둠의 트라스 맨 윗부분의 내각과 나머지 두 각의 크기를 기록해 두고 확인하는 등의 방법들을 찾아냈다. 어느새 2학년 아이도 줄자뿐 아니라 각도기와 직각자, 수평계를 능숙하게 사용하며 동등한 모둠원으로 배움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협업을 통한 분업의 방향에서 3개의 트라스를 만든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지만, 작업에 대한 고민이 고비에 닿을 때마다 쉽게 다퉜고, 종종 의기소침해졌으며, 작업이 중단되는 모둠도 있었다. 이미 모형 그네를 만들 때 보였던 모습이다. 그래서 실제 그네를 만들 때 모둠 3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는 고학년 아이들의 원성을 사던 3학년 아이 중심으로 한 모둠을 새로 만들었다. 뜻밖에 4학년 아이 둘, 2학년 아이 둘이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까마귀의 조언처럼 그냥 두고 보면 그 아이들 안에서도 나름의 리더가 생기고, 역할을 나누어서 제법 잘 한다고 하는 아이들보다 더 나은 모습이 나타날지 기대가 됐다.
트라스 맨 꼭대기에 대들보 자리를 파기까지의 과정은 그네 만들기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과정이었고,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수학적 지식, 그간 살림반을 해 오며 쌓아온 지혜를 다 꺼내서 이리저리 모아 보아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저 아이들끼리 될까 싶었던, 중저학년 모둠에서 가장 먼저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교사가 이론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실물 대들보 크기의 종이를 가져다 나무에 붙이고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렵게 생각하기 보다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작해 보라는 교사들의 조언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모둠이었다.
중저학년 모둠이 자신감을 얻어 작업 속도를 내자 고학년 모둠 둘도 부담을 덜어내고 활동을 이어갔다. 고학년들은 중저학년을 보면서 의견 대립이 마음이 상할 정도의 다툼이 되어 중단되곤 했던 작업 분위기를 돌아보는 듯했다. 마음모으기뿐만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려는 노력의 중요성, 그리고 역할 나누기와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기도 했다. 이 과정부터 "일지"에 기록하는 내용의 자세함과 양이 달라졌고 한 모둠의 모든 아이들이 성실히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의미 있게 다가 온 변화는 교사가 도움을 준다고 설명하려 할 때,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때가 더 재미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부분이다.
주춧돌이 놓일 땅을 파고, 콘크리트 만드는 방법을 모둠별로 찾아본 후 반죽을 개어 주춧돌을 만드는 과정부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결과가 눈에 보이는 단계들을 거치면서 신명 나게 활동하는 아이들을 보는 교사의 마음도 편안했다. 결과 중심으로 활동이 흘러가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매력이 있기 때문에 내달리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볼트와 너트 사이에 와셔를 끼우고 전동드릴와 몽키스패터로 조이고 안전캡을 씌우는 과정을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해 나가는 시간은 분명, 아이들에게 ‘재미있고, 무언가 대단한 기술을 배운 것 같고, 내가 굉장히 일을 잘 한다’는 느낌들을 주었다고 교사인 나도 느낄 수 있었다.
트라스 사이에 대들보를 얹고 그넷줄을 연결해 일으켜 세우는 것은 다른 반 교사들의 도움도 받아서 함께 했다. 말로만 듣고 상상했던 풍경을 직접 경험하고, 구조물로 존재했던 그네가 실제 탈 수 있는 놀이기구로 눈 앞에 드러났을 때 교사와 아이들 모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가장 뿌듯하고도 뭉클한, 한참 나중에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준비했던 상량식을 하며 모두의 안전과 재미를 기원하고, 음복을 하면서 ‘정말 끝났구나. 우리가 해 냈어. 어마어마했다.’ 자기가 어느 부분을 얼마나 꼼꼼하게 하느라 힘들었는지 무용담을 늘어놓듯 수다를 떨면서 그네를 처음 타 보는 아이들처럼 신나게 그네를 탔다. 사실 그네는 어디에서나 탈 수 있고, 이미 너무나 많이 타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든 그네’를 타 본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그토록 우리반 아이들도 교사들도 한동안 ‘그네 타기가 너무 신났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신나게 놀면서도 우리가 놓치지 않고 마무리한 것은, 일지에 마지막 작업을 하며 배운 점과 느낀 점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교생, 부모들과 함께 볼 집살림 다큐 영상에 실을 소감도 나누었다. 배운 것을 시간이 지난 뒤에 너무 늦지 않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의 중요성은 다음, 또 그다음 배움에서 아이 자신과 반 아이들이 함께 활용할 지식과 지혜를 다지는 것뿐 아니라 기록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안에서 나오지 않은 주제로 살림수업을 펼쳐야 할 때, 교사는 분명 더 많은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그것은 기술이나 가르치는 방식의 방면에서일 수도 있겠으나,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마음 모으기’를 교사가 먼저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에게 부족한 점, 내가 미처 준비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해서는 동료와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동,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번 활동에서처럼 경험이 있는 선배나 주변 이웃들, 외부 강사의 도움을 받아 연수의 기회를 갖는 노력도 필요하다. 내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더라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교사에게 자신감을 주고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더라도 조급하거나 초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교사는 아이들이 고민할 때 그것을 너무 손쉽게 해결해 주거나, 방법을 내밀지 않고 지켜봐 주면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함께 고민하고 다양한 자극과 예시를 보여줄 준비를 언제나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수업 준비와 평가는 언제나 수업 상황 속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 상상해 보며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익힌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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